기술력을 보여줄 것인가, 브랜드를 키울 것인가
9월 14일, 몰로코(Moloco)에서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개했어요. 몰로코는 모바일 앱과 커머스 플랫폼 등을 대상으로 광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애드테크 기업으로, 이번 리브랜딩을 통해 기존의 핵심이었던 ‘머신러닝’ 대신 ‘AI’를 전면에 내세우며 AI 애드테크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먼저 사실부터 밝히자면 레이디러너는 몰로코 출신이에요. 이곳에서 오랜 시간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을 했고, 커리어의 주요 경력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분석과 리뷰에서는 가능한 한 편향되지 않게 살펴보았고, 표현도 고심해서 골라보았어요.
아래에서 몰로코의 이전 모습과 이번 변화에서 발견되는 디자인 선택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요즘 AI/테크 기업의 디자인 특징도 함께 알아볼게요.
Before: 클라우드를 보여주고 싶었던 테크 기업

몰로코의 이전 로고와 심볼은 구름 형상과 몰로코의 M이 연결된 형태였어요.
2020년부터 사용된 이 로고는 이후 고도화를 거쳐가며 대략 6년간 몰로코의 얼굴이 되어주었습니다. 제작 당시 사업의 중심에 '클라우드'가 있었기 때문에 구름이 주요 그래픽 요소로 선택된 점이 포인트로, 상당히 직설적이고 구상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 몰로코가 시각적 자산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주로 그들의 기술력이었습니다. 테크 기업에서 흔히 쓰던 블루 컬러와,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을 보면 그 의도가 쉽게 느껴지죠.
After: 요즘 AI 기업다운 옷을 입다


그리고 2026년, 몰로코는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눈에 띄는 점은 요즘 AI/테크 기업에서 쉽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디자인 특징이 여기에서도 보인다는 점이에요.
요즘 AI/테크 기업 디자인의 특징
- 추상적인 형태의 심볼
- 산세리프를 피한 로고타입
- 안티AI 스타일의 뉴트럴 톤 배경 컬러
몰로코의 새로운 심볼은 '렌즈'라는 새로운 기초 그래픽 자산을 기반으로, 원이 여러 개 겹쳐진 추상적인 모습이에요. 원은 외곽선으로 그려졌고, 이것이 겹쳐진 영역에 옐로-그린-블루 그라데이션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어요.
로고타입의 서체는 획 대비가 있는 세리프를 선택했습니다. 산세리프는 이제 뻔하다는 시각과 함께, 차갑고 기술적인 인상의 산세리프보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세리프를 선택하는 AI 시대의 경향이 여기서도 발견된 셈이죠.
크림-베이지 계열의 배경 컬러도 AI 시대가 만들어낸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매끈하고 차가운 컬러보다 따뜻하고 차분한 컬러로 인간미를 담으려 하거든요.
리브랜딩의 중심에는 'AI'와 '기술력'이 있다

새로운 디자인과 'The new AI advertising frontier'라는 슬로건을 보면, 몰로코가 리브랜딩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AI 기업으로 곧장 인식되는 이미지와, 그들의 핵심 정체성인 기술력을 함께 전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달성되었을까요?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요즘 AI 기업다운 스타일도 여러개 갖췄고, 수학적인 다이어그램이 연상되는 일러스트레이션 등 클라이언트의 추구미에 필요한 속성은 다 담긴 모습입니다.
AI 기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파티가 있다고 생각해 볼게요. 새로운 몰로코의 비주얼은 이 자리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다른 AI 기업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게 차려입은 상태예요. 긴 설명 없이도 이 시대의 AI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 이 목적이 리브랜딩의 중심에 있었다면 아마 몰로코 내부의 브랜딩 만족도는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로고의 기능성과 조형미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리브랜딩을 통해 몰로코가 원한 것은 충분히 얻은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디자이너의 시선에서는 아쉬운 지점이 발견됩니다. 브랜딩과 비주얼 아이덴티티의 역할은 그저 멋진 옷을 차려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위에서 말한 AI 기업 파티 비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들처럼 입었으니 파티에서 소외되지 않고 어울리는 데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눈에 띄거나 기억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로고란 무엇일까요? 브랜드에게 있어 로고는 이름표이자 얼굴입니다. 브랜드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심볼의 모양이나 컬러 같은 일부 속성이라도 기억에 남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역할이겠죠.

이 점에서 몰로코의 이전 심볼은 효과적이었어요. 단순한 형태이긴 했지만, 구름, M, 블루 컬러라는 3가지의 키워드만으로 간단하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심볼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이 여러 개 겹쳐져 있는데, 타원과 정원이 섞여 있고, 몇 개가 겹쳐진 것인지도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포인트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지점도 명확한 모양이 보이지 않고요. 그러니까, 이 심볼을 간단하게 기억할 수단이 거의 없습니다.

조형미 관점에서는 로고타입에 쓰인 서체에 궁금증이 들어요. 일정한 굵기로 그려진 심볼과 달리 로고타입 서체는 획 대비가 있는 세리프입니다. 전반적인 굵기도 가늘어서 크기가 작을 때는 섬세하고 연약한 인상마저 들고요.
그 와중에 c의 터미널(terminal, 획 맺음 부분)은 유난히 강조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작업을 진행한 에이전시의 케이스 스터디가 기다려지는 부분입니다.
이제는 'AI 기업다움'보다 '몰로코다움'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몰로코만의 브랜드 자산입니다. 리브랜딩을 통해 AI/테크 기업이라는 카테고리 인식에 성공했고 기술력을 갖춘 인상도 충분히 얻었지만, '몰로코다운' 자산을 쌓는 점에는 상대적인 아쉬움이 남거든요.
몰로코는 AI 시대를 타고 새롭게 등장한 기업이 아닙니다. 설립된 지 10년도 넘은 기업이고, 유니콘 반열에 든 지도 한참 되었어요. 그런데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신생 기업의 초기 브랜딩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왜일까요?
기업은 오랜 시간 신뢰와 성과를 쌓아왔지만, 시각적 자산은 계속해서 리셋을 거듭하며 1단계부터 다시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 시대의 테크 기업 디자인 문법이 강하게 반영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업 고유의 헤리티지나 시각적 연속성은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죠.
하지만 몰로코는 굳이 다른 AI 기업처럼 보여야만 기술력이 증명되는 단계의 회사가 아니에요. 신뢰와 성과는 충분히 쌓았으니, 이제는 새롭게 마련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확장하고 축적하며 몰로코다운 브랜드 자산으로 키워가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마침 리브랜딩을 발표한 블로그 아티클에서도 그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었으니, 앞으로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유난히 코멘트가 많은 분석이었죠? 인연이 있는 곳인 만큼 더 멋져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할 말이 많아진 것 같아요. 광고 효율 정말 잘 나오는 몰로코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아래의 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